“경영비 부담에 일부 시설하우스 놀려…빚내 임금 주기도”

시설채소농가 경영 압박 심각…경기 이천지역 가보니
인건비, 생산비용의 70% 넘어 근로자 고용 감축으로 내몰려
생산과잉·소비부진까지 지속 잎채소 등 경락가격 형편없어 농사 포기 증가 등 시름 깊어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시급 농번기·휴경 등 특수성 고려 유연한 근로자 운영 대책도
“인건비가 2년 새 가파르게 올랐어요. 상추 한상자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 중 70%가 인건비입니다. 이에 반해 잎채소류 경락가격은 지난해 9월 이후 계속 바닥세예요. 이대로 가다간 정말 농사를 접어야 할 판입니다.”
수도권 근교 시설채소농가들이 인건비 폭등과 생산과잉, 소비부진으로 인한 가격 하락으로 심각한 경영 압박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시설채소농가들이 탈농·폐농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661㎡(200평) 시설하우스를 20동에서 많게는 80동까지 운영하고 있다. 더구나 농장별로 외국인 근로자를 5~10명 고용해 농사를 짓는 실정이다.
경기 이천지역 시설채소농가들을 현장취재해 이들의 어려움을 들어봤다.
◆인건비 부담에 고용 줄여=부인과 함께 쌈채류 시설하우스 60여동을 운영하는 김주현씨(54·율면)는 지난해까지 외국인 근로자 10명을 고용했다. 올핸 절반으로 줄일 계획이다. 김씨는 “외국인 근로자 한명당 적어도 월 200만원은 지급해야 한다”면서 “인건비 부담이 워낙 커 일부 시설하우스는 아예 놀리고 인력은 5명만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환경농법으로 시설하우스 30동에서 채소를 생산하는 정연수씨(47·율면)도 외국인 근로자 6명 중 2명을 내보낼 계획이다. 그는 “채소 가격이 사실상 생산원가에도 못미치는 상황에서 인력을 계속 고용할 순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시설하우스 37동을 경영하는 김익수씨(59·대월면)는 지난해 12월, 10명이던 외국인 근로자를 6명으로 줄였다. “지금 채소 시세로는 인건비는 고사하고 종자값도 안 나온다”며 “20동은 아예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했다.
◆생산비 갈수록 증가…70%가 인건비=실제로 상추 생산원가를 따져보면 농가의 어려움을 체감할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 한명이 한시간 동안 수확하는 상추의 양은 평균 6㎏ 정도다. 올해 적용된 최저임금은 한시간에 8350원. 따라서 상추 1㎏을 수확하는 데 드는 인건비는 1391원이다.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상추 4㎏ 한상자를 수확하는 데 드는 인건비만 5564원인 것이다.
자재비도 만만치 않다. 농가에 따르면 661㎡(200평)의 시설하우스에서 상추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퇴비·비료·멀칭비닐·종자·임차료 등 최소 70만원이 들어간다. 시설하우스 한동당 평균 300상자(4㎏ 기준)를 수확하니, 한상자당 드는 각종 자재비는 2333원이다.
인건비에 자재비를 합치면 상추 한상자당 생산비용은 최소 7897원. 여기엔 유통비용(상자대 800원, 운송비 600원, 상하차 수수료, 경매수수료), 파종 인건비, 퇴직금(한시간당 500원 정도) 등은 아예 빠졌다. 인건비와 자재비만을 고려했을 때 상추 한상자 생산비용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넘는다.
이에 반해 현재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상추 4㎏ 가격은 5000~8000원. 높은 인건비가 농가들이 주장하는 채산성 악화의 주범인 것이다.
◆만성적인 생산과잉에 소비부진…농가경영 악화=더 큰 문제는 이렇게 수확한 잎채소의 경매가격이 항상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잎채소 시설하우스 80동을 경영하는 귀농 8년차 농민 박태하씨(48·율면)는 “상추를 포함해 각종 쌈채류의 경우 1년 중 여덟달은 도매시장 경락가격이 생산비에도 못미친다”면서 “갈수록 농사짓기가 벅차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익수씨는 “겨울철엔 그나마 시세라도 괜찮았는데, 올겨울은 유독 가격이 형편없다”며 “정말 이대로 가다간 농사를 접을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출을 받거나 빚을 내는 농가가 늘고 있다. 김인숙씨(50·율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보험료 약관대출을 받아 월급을 준 적이 있고, 출하선도금을 수령해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동선씨(59·대월면)는 “그동안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임금을 줬는데 더이상 대출을 받을 수도 없게 돼 이대로 가면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건비 부담과 농산물 가격 하락에 아예 농사를 그만두는 농가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박씨는 “올들어 이웃의 두농가가 농사를 포기하고 시설을 매물로 내놓은 것을 봤다”면서 “만성적인 가격 부진과 인건비 상승에 시설채소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가격·고용 유연성 보장 절실=시설채소농가들은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10년 경력 쌈채류 생산농가 서인열씨(50·율면)는 “쌈채의 경우 도매시장에서 2㎏ 한상자가 200원에 나올 때도 있다”면서 “정해진 가격이 없어 빚어지는 참상”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서씨는 “현 정부에서 약속한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이 꼭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인건비는 법으로 정해 정확하게 지급해야 하는데 반해, 농산물 가격은 (수요공급의) 시장논리에 따라 정해지고 있다”면서 “농산물 값 하락과 인건비 상승 등 모든 부담을 고스란히 농가가 떠안는 구조에서 버틸 수 있는 농가는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또 농사 특성상 인력이 많이 필요할 때와 그렇지 않은 때가 있는 데, 파종·수확시기 등에 맞춰 보다 유연하게 인력을 고용하고 이웃농가에도 파견하도록 하는 고용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농가들은 입을 모은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 채용기간은 1년이다. 1년 동안은 무조건 고용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휴경해도 임금은 꼬박꼬박 지급해야 한다. 게다가 인근 농장으로 파견도 불가능하다.
김인숙씨는 “인력이 많이 투입될 때는 외국인 인력풀을 만들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농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외국인 근로자 운용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